이 글은 의학적 진단이 아니며,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대학병원 종양병동에서 8년째 항암 환자분들과 함께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현재는 종양전문간호 대학원에서 더 깊이 있는 간호 지식을 공부하며 환자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난관 중 하나가 바로 ‘먹는 것’입니다. 특히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을 때 병원에서 권고하는 ‘저균식’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하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말에 무엇을 먹여야 할지 막막해하는 보호자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과 실무적인 관리 팁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간호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병동에서 저균식 교육을 할 때 환자분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들입니다.
“과일은 아예 못 먹나요?” : 껍질을 두껍게 까서 먹는 과일(바나나, 오렌지 등)은 세척 후 섭취가 가능하지만, 딸기나 포도처럼 껍질째 먹는 과일은 수치가 낮을 땐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배달 음식은 절대 안 되나요?” : 조리 과정과 위생 상태를 확신할 수 없는 배달 음식은 가급적 피하시길 권합니다. 꼭 드셔야 한다면 펄펄 끓인 상태로 배달되는 국물 요리를 다시 한번 끓여 드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생수는 괜찮죠?” : 개봉한 지 24시간이 지난 생수에는 세균이 번식하기 쉽습니다. 끓인 물을 드시거나, 작은 용량의 생수를 개봉 즉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2. 증상이 생기는 이유
항암 치료는 우리 몸의 나쁜 암세포를 공격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의 ‘방어군’인 백혈구(특히 호중구)도 함께 공격합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와 같습니다. 평소 건강할 때는 우리 몸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던 음식 속 미세한 세균이나 곰팡이들이, 방어군이 없는 틈을 타 성 안으로 들어와 ‘감염’이라는 큰 불을 지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수치가 회복될 때까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균’의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는 ‘저균식’이라는 방패가 필요합니다.
3. 간호사가 전하는 실전 관리 팁 & ‘오늘의 작은 실천’
표준 지침도 중요하지만, 제가 병동에서 환자분들을 지켜보며 느낀 현실적인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기 건조대의 습기를 조심하세요: 설거지 후 식기 건조대에 고인 물은 세균의 온상입니다. 환자 전용 식기는 뜨거운 물로 소독한 후 키친타월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여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포장 간식을 활용하세요: 대용량 과자나 캔디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낱개 포장된 간식을 드실 때마다 새로 뜯는 것이 훨씬 위생적입니다.
입안의 상처를 확인하세요: 저균식을 잘 지켜도 입안에 상처(구내염)가 있으면 감염 위험이 큽니다. 식사 전후로 부드러운 가글을 생활화해 주세요.
[오늘의 작은 실천] 오늘 식사를 준비하기 전, 주방 조리대와 도마를 식초물이나 살균 세정제로 닦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환경 위생이 저균식의 절반입니다.
4. 한눈에 보는 핵심 요약표
| 구분 | 허용 식품 (안전) | 제한 식품 (주의) |
|---|---|---|
| 곡류 및 빵 | 갓 지은 밥, 충분히 구운 빵, 익힌 면류 | 생크림 빵, 샌드위치, 팥빙수, 떡(고물 포함) |
| 육류 및 어패류 | 완전히 익힌 고기/생선/계란 | 회, 초밥, 육회, 반숙란, 훈제 연어 |
| 채소 및 과일 | 푹 익힌 채소나 나물, 껍질 두꺼운 과일 | 생채소, 샐러드, 쌈 채소, 껍질째 먹는 과일 |
| 유제품 및 기타 | 멸균 우유, 가공 치즈, 통조림 식품 | 요구르트(생균), 발효 치즈, 견과류(익히지 않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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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황별 주의사항 또는 위험 신호
앞서 설명한 저균식 식단 관리도 중요하지만,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의 변화는 매우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8도 이상의 고열: 해열제를 드시기 전에 병원에 먼저 연락하여 혈액 배양 검사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오한 및 떨림: 열이 나기 직전 몸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이 있다면 감염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심한 설사나 복통: 식단 관리 중에도 설사가 3~4회 이상 지속된다면 장염이나 탈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입안의 하얀 반점: 아구창 등 곰팡이균 감염이 의심될 수 있으므로 의료진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6. 간호사의 마음을 담은 마무리
“이것도 못 먹는데 기운을 어떻게 차리나” 싶어 눈물지으시는 보호자분들을 뵐 때마다 제 마음도 참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균식은 평생 해야 하는 식단이 아닙니다. 항암 치료의 파도를 안전하게 넘기 위해 잠시 입는 ‘구명조끼’ 같은 것입니다.
환자분의 수치가 회복되면 곧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실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오늘 하루도 환자 곁을 지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정성이 환자분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7. 참고문헌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